금 가격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공식이 있다.
실질금리가 오르면 금값은 떨어진다.
이유는 어렵지 않다.
금은 보유한다고 이자가 생기지 않는다. 반면 미국 국채는 이자를 지급한다.
따라서 금리가 높아질수록 굳이 이자를 주지 않는 금을 보유할 이유가 줄어든다.
특히 중요한 것은 단순한 명목금리가 아니라 물가를 고려한 실질금리다.
과거 금 시장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랬다.
실질금리 상승 → 금 보유 기회비용 상승 → 금값 하락
그런데 최근 시장에서는 이 공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데도 금 가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금리보다 '금리가 오르는 이유'가 중요해졌다
여기서 한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금리가 오른다는 결과는 같더라도 금리가 오르는 이유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경제가 강하고 중앙은행의 긴축 가능성이 커져 금리가 올라간다면 기존 공식대로 금에는 부담이 된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커지고 국채 발행이 계속 늘어나면서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를 보유하는 대가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근 미국 장기금리에는 이런 문제가 함께 섞여 있다.
재정적자 확대
↓
국채 발행 증가
↓
장기 국채 공급 부담
↓
더 높은 금리 요구
즉 금리 상승을 단순히 '미국 경제가 강하다'는 신호로만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미국 국채가 흔들리면 금의 역할도 달라진다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부채가 계속 늘어나고 재정적자가 확대되면서 시장에서는 국채 공급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금리 급등 이후 장기채 바이백 규모까지 확대했다.
바이백 자체는 원래 국채시장의 유동성과 정부의 현금을 관리하기 위한 정상적인 제도다.
하지만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왜 하필 장기금리가 크게 오른 시점에 바이백 규모까지 확대했느냐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서 금의 특징이 다시 부각된다.
미국 국채는 미국 정부의 부채다.
은행예금은 은행의 부채다.
하지만 금은 누구의 부채도 아니다.
특정 국가나 금융기관이 돈을 갚을 능력을 전제로 존재하는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부채나 통화가치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금은 단순히 '이자를 주지 않는 자산'이 아니라 신용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과거와 지금의 차이
그래서 최근 상황을 아주 단순하게 비교하면 재미있다.
과거
실질금리 ↑
→ 금 보유 기회비용 ↑
→ 금 수요 ↓
→ 금값 ↓
반면 최근에는
현재
실질금리·장기금리 ↑
→ 미국 재정·국채 공급 우려 ↑
→ 국채에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 요구
→ 금 수요 ↑
→ 금값 ↑
물론 이것이 앞으로 항상 성립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금리가 오르면 금은 무조건 떨어진다'는 공식 하나만으로 현재 금 시장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앙은행까지 금을 사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다.
금 시장의 주요 매수자가 개인투자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각국 중앙은행은 상당한 규모의 금을 매입해왔다.
중앙은행이 금을 사는 이유는 일반 투자자와 조금 다르다.
단기간 금값이 얼마나 오를지를 맞히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외환보유자산을 분산하고 특정 통화나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목적이 더 크다.
즉 금에 구조적인 수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금값 상승을 단순히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 같아서"
라고 설명하는 것도 부족하다.
금리 외에도 중앙은행의 매수, 달러 가치, 미국 재정, 국채 공급, 지정학적 위험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움직임도 같이 봐야 한다
금 가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변수가 달러다.
금은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달러가 약해지면 금 가격에는 유리하다.
최근 미국 장기 국채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과정에서도 달러 약세와 금 강세가 함께 나타나는 구간이 있었다.
따라서 지금 금 시장을 볼 때는
미국 10년물 금리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 재정적자
→ 국채 발행량
→ 장기 국채금리
→ 달러
→ 중앙은행 금 매입
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40년 공식'은 정말 깨진 걸까?
아직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만약 앞으로 미국의 실질금리가 크게 상승하고 달러까지 강해진다면 금 가격에는 다시 부담이 될 수 있다.
재정적자가 안정되고 장기 국채 수요가 회복되면서 중앙은행의 금 매입까지 둔화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즉 금리와 금의 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금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의 무게다.
과거에는
금리 ↑ → 금 ↓
이라는 설명이 상당히 강력했다면,
지금은 그 중간에 질문 하나를 더 넣어야 한다.
왜 금리가 오르고 있는가?
경제가 너무 좋아서 올라가는 금리인지,
아니면 미국의 재정적자와 막대한 국채 공급 때문에 투자자들이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면서 올라가는 금리인지에 따라 금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금값에서 봐야 할 것은 이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금 가격을 볼 때 단순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만 보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다음 흐름을 같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재정적자 → 국채 발행 증가 → 장기금리 → 달러 → 중앙은행 금 매입
특히 미국 국채금리가 높은데도 금 가격이 계속 강하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
시장이 단순히 높은 금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채와 달러자산에 어느 정도의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다시 계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금값 상승은 단순히
"금리 인하 기대 때문에 금이 오른다"
정도로 끝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더 궁금한 것은 다음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왜 이렇게 높은 금값에도 계속 금을 사고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중앙은행의 금 매입과 미국 국채의 관계를 따로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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